시드니에 잠시 머물때 친구차를 종종 얻어 탔었다. 한국에서는 나름 운전 얌전히 하는 친구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급정거 급출발 급회전이 많아진걸 느낄 수 있었다. 애들레이드 도착해서도 처음 공항에 픽업 나오신 분 차를 탔을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낄수가 있었다. 심지어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멀미가 살짝 나기도 했다.
나만 느낀건 아니어서, 마느님도 여기 사람들은 왜 운전을 험하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내가 나중에 운전을 하게 되면 왜 그런지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애들레이드 도착해서 약 2주 가까이 운전을 하고 나서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순간순간 교통 신호에 따르기보다는 운전자의 판단과 서로의 약속에 의해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길을 가다가도 아주 큰 길이 아니고서는 신호등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교차로가 아니고서는 보행신호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있다 하더라도 한국으로 치면 비보호 좌회전이 엄청 많다.
여기서는 우회전 신호가 없는 경우가 참 많은데, 우회전 금지 표시가 없다면 직진 신호에서 반대쪽에서 차가 오지 않는 경우 비보호 우회전을 할수가 있다. 이런 경우 비보호 우회전을 하는 요령은, 직진 신호가 떨어지면 슬금 슬금 차를 교차로 가운데까지 몰고 나가서, 반대쪽에서 차가 오지 않는 경우에 잽싸게 우회전을 하면 된다. 만약 반대쪽에서 계속 차가 오는경우에는 직진 신호가 주황색으로 바뀔때 반대쪽 차들이 멈처서는듯 싶으면 잽싸게 우회전을 하고, 만약 반대쪽 직진 차량들이 주황색 신호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면, 주황색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자 마자 잽싸게 우회전을 하면 된다.
여기서 운전을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건 - 지금도 어렵지만 - 좁은 골목길에서 반대쪽 차선을 타는 경우다. 쉬운 방법은 좌회전을 하고 유턴을 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골목길에서 나와 큰 도로에 합류할때 차선을 가로질러 우회전해서 타도 된다. 실제로 네비게이션도 그렇게 길을 안내한다.
이때도 요령은 오른쪽에서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차가 오지 않는다면 중앙선 근처까지 차를 움직인다. 반대쪽 차선, 그러니까 왼쪽에서 차가 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우회전을 해서 반대편 차선을 타면 되고, 왼쪽에서 차가 오는 경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오지 않을때 차선에 합류하면 된다. 보통 이런 경우 중앙선 근처에서 기다릴 때 양쪽 차선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에서 기다릴 수 있을때가 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차선을 막고 기다려야 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 그래서 여기서 오래 운전한 분들도 속편하게 좌회전하고 유턴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이렇게 호주에서는 신호없이 운전자 판단에 의해 운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순간 순간 급출발을 많이 하게 되는거 같다. 그리고 코너링을 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완만하게 커브를 그리면서 코너링을 할 수 없는 도로 구조가 많기 때문에 급한 코너링을 하게 되는거 같다.
언급한거 말고도 호주에서 운전하면 한국과 다른 것들이 참 많다. 가령 예를 들어 큰 길에서 중앙선을 넘어 우회전해서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그냥 깜빡이 켜고 들어간다. 그리고 동네 골목길 같은 경우에 신호없는 교차로가 나오면 한쪽길은 반드시 Giveway 라고 양보해야 하는 차선이 있다. 내가 가는길이 Giveway 차선이 아니라면 앞에 교차로가 나올때 옆에서 차가 오는지 신경쓰지 않고 그냥 직진한다. 우리 나라같은 경우 신호없는 교차로가 나온다면 교차로앞에서 일단 서행하면서 좌우에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볼 텐데, 여기는 내가 양보 차선이 아니라면 옆에서 나오는 차는 신경쓰지 않는다.
서로간의 약속과 그 약속을 다른 운전자들도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이 없다면 돌아가기 힘든 시스템인거 같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면허를 따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면허를 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면허의 과정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고는 하는데, 일단 애들레이드에서는 L-P1-P2-Full licence 라는 4단계를 거쳐야 한다.
필기 시험을 합격하면 L 면허를 가지게 되는데, L(Learner) 면허는 혼자 운전할 수 없고 반드시 Full Licence를 받은지 2년 이상 된 사람이 동승하고 차 앞/뒤로 "L"자 Plate를 달아야 운전을 할 수가 있다. L 면허를 취득하고 1년이상(25세 이상인 경우 6개월)이 지나거나, 75시간 이상 지정된 Supervisor로부터 교육을 받으면 P1(Provisional 1)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데, 실기시험을 보거나 정부에서 제공하는 Course를 이수해야 한다.
P1면허를 취득하면 혼자 운전할 수 있지만, 역시 차 앞/뒤로 "P"자 Plate를 달고 운전해야 한다. P1면허를 취득하고 최소 1년후에는 P2 면허를 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P2면허 역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컴퓨터로 가상 시험을 보고 취득하게 된다고 한다. P2 면허를 취득하게 되면 더이상 차 앞/뒤에 Plate를 달지 않아도 된다.
P1/P2 면허 기간을 합쳐서 2년 이상이 지나고 19세가 넘었다면, Full Licence가 주어지게 된다. 이렇게 Full Licence를 따는 과정이 쉽지 않고, 초기 1년간 Full Licence를 가진 사람이 동승해서 운전 연수를 하게 되니, 운전을 확실하게 배우게 되는거 같다. 올해초부터 남호주에서는 한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25세 이상이면 Full Licence로 바꿔주는데, 어떻게 보면 면허시험 없이 Full Licence를 받게 되서 편하게 된 점도 있지만, 호주의 운전 법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운전을 하게 된다면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면허증을 호주 면허증으로 교환을 받았다 하더라도, 나는 호주내에서 제대로 된 운전 강사에게 연수를 받는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 또한 처음에 친구차 많이 얻어타고,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공부도 하고 해서 바로 운전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주변분들의 조언으로 운전 연수를 받고 나서야 왜 운전 연수를 받으라고 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머리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 한들,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하는건 많이 다르다. 일단 차 진행 방향이 다르고, 차폭에 대한 감도 다르고, 미처 내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도 직면하게 된다. 호주에 와서 운전을 한지 2주정도 된 지금은, 여기 운전에 많이 익숙해져서 처음 며칠동안 운전할 때 긴장됐던 모습도 거의 없어졌다. 심지어 왼쪽으로 운전하는게 자연스러워서, 지금 당장 한국가서 운전하면 많이 어색할거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이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운전 연수를 받았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호주에서 처음 운전을 할 때, 반드시 제대로 된 강사에게 연수 받는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운전 얘기는 그만하고, 지난주 토요일 동서남북으로 인스펙션을 다니느라 바빴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서 오늘 Application을 제출했는데, 여기서 부동산에 Application을 제출하려면 부동산에서 요구하는 점수를 채워야 한다. 보통 100점을 기준으로 하는데, 배점은 부동산마다 다르다. 여권이 40점에서 50점, 운전면허증이 40점에서 50점, Bank Statement가 10점에서 30점, 차량 등록증이 20점에서 30점 정도 한다.
그 외에도 최근 몇달간 렌트비 지불 영수증, 전기/수도 납부 영수증 등등이 점수가 있는데, 이런것들은 초기 이민자들한테는 해당이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여권/운전면허증 외에 Bank Statement나 차량 등록증등으로 부족한 점수를 메꿔야 하는데, 점수가 100점이 넘는다는 건, 부동산에서 Application을 진행한다는 의미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아니다. 렌트 History가 없는 초기 이민자들은 그래서 집 구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많이 쓰는 방법이, 집 주인에게 편지를 정성스럽게 써서 6개월치 렌트비 선납의사를 밝히거나, 정말 집이 맘에 들면 시장에 나온 가격보다 조금 비싸게 올려서 낼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정도이다. 우리는 지난 두번의 Application 제출한것이 거절을 당했고, 오늘 제출한 Application은 일단 부동산에서 진행을 하는것을 확인을 했다. Application 작성도 쉬운게 아니라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준다.
집에서 살 18세 이상인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모두 적어야 하고, 전에 살던 집 주인이나 부동산 에이전트의 연락처와, 개인적인 Reference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의 연락처도 적어야 한다. 직업명세서도 적어야 하고 내가 한주에 얼마 버는지도 적어야 한다. 어제 Application을 작성하면서 잘못적은걸 수정해야 하는데 수정액이 없어서 다른 종이를 잘라 붙여 수정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Application과 함께 내 신상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들도 첨부를 해야 한다. 여권/운전면허증을 스캔해서 첨부해야 하고, Bank Statement도 스캔해서 첨부해야 한다. Bank Statement 같은 경우 렌트비를 납부할 수 있는 재정능력을 보기도 하기 때문에, 잔고를 빵빵하게 하는게 좋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계좌를 갖고 있는 NAB 같은 경우 3개월에 한번씩 Bank Statement를 보내주는데,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좌 개설할때 받았던 잔고가 0인 Bank Statement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잔고가 그래도 어느정도 들어있는 새로운 Bank Statement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바로 은행에 달려가서 $4를 주고 Bank Statement를 받았고, 어제 밤에 작성한 Application과 함께 스캔해서 오늘 아침에 보냈다. 부동산으로부터 Application 잘 받았고, 오늘중으로 진행을 하고 내일까지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메일을 오전에 받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Reference를 해 주시기로 한 분이 점심때쯤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집 보느라 지쳐가고 있고, 나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기 때문에 내일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다. 초기 정착의 3단계인 차 구입 - 렌트 집 - 직장 에서 우리는 이제 2단계를 향해 가고 있는데, 일단 자기 집을 구하고 나면 어느정도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나도 렌트집을 구하는것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면, 블로그에도 초기정착 카테고리에는 포스팅을 그만하고, 내가 애들레이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이런 하늘을 어렵지 않게 자주 볼 수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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